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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중세철학의 실체논쟁

철학하는 김과장 2023. 4. 11. 07:24

 

중세는 철학이 세계의 모든 현상의 최종적인 원인이자 기체로서의 신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 시기였다.

 

중세철학은 우선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신앙이 진리임을 증명하고 지적인 반대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변증(辨證)의 도구로서 출발하였다.

 

중세철학은 신을 내세워 우주의 본질과 만물 생성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그처럼 신이라는 최고의 일반성을 통해 세계의 모든 특수성을 설명하고자 한 철학체계의 핵심적인 문제는 '실제로 그런지'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후 근현대철학에서 중세철학의 무용성과 허무함이 집중적으로 질타당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대철학에서 명제의 '검증가능성’이 철학의 중심주제로 대두된 배경이 된다.

 

중세 초대교회의 교부(敎父)들에 의해 기독교의 교의(敎儀)를 심도있게 성찰하며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신학의 전통이 세워졌고, 그 과정에 그리스철학이 결합함으로써 그 깊은 흔적을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교의에 남기게 된다.

 

 

1)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의 유출설(流出說)

 

신플라톤주의는 기원 후 3세기에 플로티누스에 의해 창설되어 6세기까지 존속한 학파로서, 플로티누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신피타고라스학파 등의 철학인데, 그는 이들 그리스철학만이 아니라 오리엔트, 이집트의 신비술에서도 많은 것을 계승하였다.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설에 의하면 인간의 지성으로 파악되는 이데아의 세계는 영원·불변하며, 감각으로 지각되는 물리적 세계 내 개개의 사물들은 완전한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模寫)에 지나지 않는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이같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더욱 세분화시켜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단계적으로 산출되고, 다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철학의 결합의 산물이다.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에 따르면 참된 실재이자 하나의 근원은 일자(一者, Hen)뿐이며, 일자의 ‘유출(流出, Eranatio)’로써 만물이 산출된다고 한다.

 

일자는 제1인자 또는 선이라고 하며, 그 자체는 완전히 단순한 것이어서 그 속에 있는 모든 다양성을 잠재적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한 충실이며 모든 인식, 생명, 본질, 존재를 초월한다고 한다.

 

일자에서 지성인 누스(nous)가 유출되고, 그 다음으로 영혼인 프시케(psyche)가 유출되며, 마지막으로 물질의 세계인 현상계가 유출된다.

 

이렇게 완전하고 선하며 하나인 신으로부터 각종의 존재자가 단계적으로 전개되어 현실의 세계가 완성된다. 각 단계는 그보다 상위 단계의 모사이기 때문에 가장 상위에 있는 일자 안에서는 모든 단계가 발견된다.

 

'모든 대립을 초월하는 절대자'인 일자에게서 '우주질서의 인식기능'인 예지(누스) 즉 가, 예지에서 '생명력'인 혼(프시케)이 마치 넘치는 물질처럼 유출되는데, 아래의 것은 위의 것과 본질을 같이 하지만 세력이나 힘이 열등한 존재형태이며, 일자와 예지와 혼은 계층을 달리하면서 연속되어 있다. 일자에셔 멀어짐에 따라 일자의 힘을 잃게 되기 때문에 선과 완전성에서 열등해지며, 거기서 계층적 세계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처럼 신플라톤주의는 '일자'와 '유출'이라는 개념으로 세계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설명하였으며, 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일자'와 '유출'을 ‘신’과 ‘창조’로 대체하면 기독교의 세계관과도 비슷한 체계가 되므로 신플라톤주의는 교회의 초기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일자로 대체하여 세상을 설명하려 했을 뿐이고 모든 것은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발전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철학을 거꾸로 뒤집어 일자의 유출로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뭔가 체계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주장할 뿐이었다.

 

그에따라 그것은 신과 세상과의 관계를 '유출'을 내세워 이데아와 그림자의 관계로 대체하고 만물의 본원인 ‘일자'를 중심으로 하위에 있는 것은 상위의 것을 모사 혹은 모방한다는 식의 플라톤철학과 하위에 있는 것은 상위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일자'와 합일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식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논리체계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혼입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일자에서 지성인 누스가 유출되고 영혼인 프시케가 유출되며 마지막 단계로 물질의 세계인 현상계가 유출되었다는 식의 신플라톤주의의 주장은 우주에서 물질과 생명과 인간의 순으로 출현을 지지하는 지질학적, 화석상의 증거라는 '검증의 기준'을 피해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의 창조행위를 통해 정신과 영혼과 물질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을 일자와 유출을 통해서 현상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결코 '검증가능성의 기준'을 통과할 수 없는 허무한 형이상학체계의 하나로서, 그리스철학과 오리엔트의 신비술까지 동원하여 기독교를 오염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철학에서는 구약에서 가르치는 ‘무로부터의 창조론’은 전혀 알지 못하는 개념이었다.

 

플라톤이 창조에 대하여 말할 때, 그는 근원이 되는 물질을 가상하고 신이 이에 대하여 이데아라는 형상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질료는 영원한 것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단지 형상만이 신에 의하여 비롯되는 것이다. 그들의 신은 조물주라기보다는 뛰어난 기술자요, 건축가라 하겠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가 낳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신은 우주의 창조주로서 오직 질서와 정돈뿐만 아니라 물질까지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세계’는 신의 이데아에 따라 그 의지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신이 어떤 존재이고 실제로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였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그는 단지 "만일 우리가 신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신앙의 우위 속에 이성을 연결시켰다.

 

그는 교부철학과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을 결합하여 카톨릭교회의 교의에 이론적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되는데 만년의 저작인 신국론에서 그는 인간의 존재를 지상적인 측면과 천상적인 측면 양쪽에서 파악하고, 역사를 인간에 대한 신의 구원과정의 실현으로 보면서, 교회라는 보편적인 인간공동체의 확립을 통하여 영원한 기독교공화국인 ‘신의 나라’가 실현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거기서도 세상만물을 이데아의 그림자로 파악한 플라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은 중세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에도 기독교 도덕교육의 핵심적인 교재로 사랑받았는데, 거기서 그는 자유의지와 악의 실체와 관련하여 ‘악의 문제’는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자들이 이해하던 이성과 감정의 불균형이 초래한 퇴행이 아니라, 그에게 악은 선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택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며, 인간은 신의 은총이 없이는 이러한 의지를 유발하는 욕구를 거부하고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다고, 즉 그에게 악이란 감정에 압도당한 이성이나 무절제한 삶이 가져온 결과가 아니라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본원적인 무기력에서 근원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체로 순수철학에 몰두한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가 관심을 가졌던 제한된 범위의 순수철학적 문제에서는 놀라운 통찰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신학자로서 보다는 철학자로서 그의 진가가 나타난다,

 

아우구스투스의 철학에 대한 핵심적 기여는< 고백론> 11권에서 소개된 그의 ‘시간에 관한 성찰’에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혹은 ‘만약에 구약의 창세기 1장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신에 의해 창조가 이루어졌다면 왜 세계는 좀 더 일찍 창조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시점보다 일찍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았다. 시간도 세계가 창조될 때 함께 창조된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 답변은 시간과 공간을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통합된 개념으로 생각하는 현대물리학의 시공간 개념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현대물리학의 시공간 개념에 의하면, 우주 빅뱅으로 공간이 생겨날 때 비로소 시간도 공간과 함께 생겨난 것이며, 따라서 빅뱅 이전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우주에는 본래 '현재'만이 존재하며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구분하면서 과거에 근거한 현재와 눈앞의 감각에 근거한 현재, 그리고 미래에 근거한 현재라는 삼차원적 시간성을 가진 인간이 출현함으로써 과거와 미래가 '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좀 더 일찍'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의 창조'와 함께 출현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구분할 줄 아는 정신능력을 가진 인간이 없으면 우주에는 '영원한 현재의 연속'이 있을 뿐, 까마득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까마득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도 없다.

 

사람들은 '동물도 인간과 별로 다를 바 없다'라는 애니미즘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제로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구분할 줄 모르고 영원히 눈앞의 감각의 현재를 사는 동물들에게는 현재, 현재, 현재로 이어지는 '영원한 현재'가 있을 뿐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인간은 객관주의적 세계관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까마득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백년도 못살고 사라지는 초라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관주의적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은 까마득한 우주의 시간과 운명을 함께하는 소우주"이다.

 

이것은 인간의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인간관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철학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한 기여에 해당한다.

 

 

3) 토마스 아퀴나스

 

한편 중세 유럽의 스콜라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경험세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처음에는 신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철학은 신이 창조한 자연질서에 대한 이성적 이해에 불과하지 신의 초자연적 속성까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치공동체를 ‘지배욕’의 산물로 정의한 이후 기독교전통에서 통치는 사악한 인간세상에서 필수적인 최소한의 질서를 제공하기 위한 차선일 뿐이었지만 아퀴나스는 이러한 전통을 따르지 않고 인간은 자연적으로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받아들였다.

 

즉 인간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동물이고, 그러기에 인간은 정치공동체를 통해 최상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정치는 공공선을 증진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아퀴나스는 제1원인인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결사만으로는 최선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신에 대해, 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논구하였지만 이처럼 이성의 진리와 신앙의 진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의 논변은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교 신론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것처럼 사물에서 질료와 형상을 구별하여 접근하려 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형상 또는 본질은 원래 신의 정신 안에 있던 이데아로서, 흡사 “창조의 앞선 구상”으로써 존재한다.

 

만약에 신이 세상만물을 창조했다면 신은 어떤 사물을 창조하기에 앞서 어떤 질료에 어떤 형상을 부여할 것인지를 구상으로써 갖고 있었을 것이다.

 

‘보편논쟁’이란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중세 유럽에서 ‘보편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존재론적·논리학적인 철학논쟁이다.

 

실재론(實在論:realism)이란 “사물의 참된 존재인 본질 또는 보편자는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거나 “본질 혹은 보편자가 실재 안에 실체(實體)로서 존재한다”라는 주장이다.

 

반면에 유명론(唯名論:nominalism)은 본질 혹은 보편은 ‘명칭’에 지나지 않고 실재(實在) 안에는 개물(個物)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중세신학의 정통파들은 실재론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실재론에 의하면,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공통된 실체에 우유성(偶有性)이 가해져서 개개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논쟁’과 관련하여 ‘보편자는 실재이지만 사물에 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존재한다’라는 ‘중용의 실재론'의 입장을 취하여, "보편은 개개 사물 이전에 존재하고(신적 이성 속에)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며(개개 사물의 보편으로서), 모든 사물 뒤에 존재한다(보편을 인지한 인간의 마음에 나타나는 것으로서)"라고 설명하였다.

 

즉 보편개념은 사물 이전에 신의 이성 속에 존재했다가 신의 창조행위로 인해 개개 사물의 보편으로서 사물 속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신의 정신에 관여하는 유사성"으로 인해 '세계에 대해 신이 가졌던 생각을 뒤좇아 사유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보편자는 신의 정신 안에 있을 때는 아직 실재가 아니었고 신이 세상을 창조한 후에야 사물 속에 실재하는 것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세계 내 개개의 모든 실재 영역은 그 안에서 형상이 질료보다 더 고상하면 할수록 더 높은 위치에 놓여있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이루어진 전체로서 나타난다고 보았는데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죽은 사물은 가장 낮은 존재 단계를 의미한다. 이보다 높은 단계로는 식물이 있다. 식물은 자기 자신 안에 자신의 형상을 식물의 영혼으로 가지고 있다. 동물은 이보다 높은 단계이다.

 

동물의 영혼은 식물의 영혼에 감각적인 능력, 즉 지각까지도 소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물도 비교적 낮은 단계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동물의 영혼은 육체와 함께 소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도 역시 식물과 동물처럼, 그의 영혼 안에 식물적인 능력과 감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다른 모든 것과 구별해 주는 것은 그의 영혼이 근본적으로 정신적이며 그래서 불멸적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생명에는 영혼은 물론이고 육체와 결합된 정신적 부분도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가 없는 순수한 정신, 즉 천사는 인간보다 더 높은 단계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천사 역시 완전하지는 못하다. 천사는 비록 순수한 정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창조된 정신'이다.

 

따라서 창조되지 않은 정신, 즉 신은 모든 것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신은 순수한 형상으로서 어떠한 질료적인 것과도 관계가 없기에 그러한 신은 순수한 정신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구상한 실재의 구도이다.

 

이처럼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신神을 실재의 가장 고상한 형상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목적론적 실재로 설명하고자 했다.

 

만일 전체 세계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르려는 끊임없는 추구라면, 최고도로 추구되는 것은 어떠한 가능태도 배제된 순수 실재일 것이다. 이러한 추구의 최종적인 완성이 신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채택함에 따른 필연적인 결론이다.

 

만일 목적론적 세계관에 따라 전체 세계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르려는 끊임없는 추구라면, 신이 그를 향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세계 안에서 최고도로 추구되는 것으로서의 신이라면, 만유는 궁극적으로 신과의 합일에 이르게 되는 이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밀착하게 됨으로써 철학은 그리스도교의 사상을 퇴색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이제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의해 세계의 일부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신은 비록 세계 사건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는 아닐지라도, 그를 향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 그러나 그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는 최고의 원리로서 세계사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범신론적인 신’ 개념과 유사하게 된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러한 범신론을 받아들였다면 세계를 초월해 있는 신이 절대적으로 고귀하다는 사상은 붕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적 신 개념에서 본질적인 요소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범신론적 귀결을 피하기 위해 창조 사상으로 되돌아간다.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의 사상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였듯이 세계 안에서 최고도로 추구되는 것으로서 그 모든 추구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창조자로서 모든 사건의 시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채택함에 따른 범신론적인 귀결과 창조사상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그러나 아퀴나스는 “그러한 모순은 자연적인 이성의 방식으로는 결코 밝혀질 수 없으며 오직 신앙의 길을 통해서만 참됨이 증명될 수 있는 하나의 전제이다”라며 자신의 신학에서 최대의 쟁점을 '신앙의 길'을 내세워 도피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인 목적론과 자신의 창조사상을 전혀 조화시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창조사상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철학을 '버렸어야' 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창조론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창조론을 더욱 엉성하게 희화화하는 요인이 되었을 뿐이다.

 

세계 내 ‘존재의 층구조’를 구분하지 않고 전체 세계를 물질에서 식물, 동물, 인간, 신에로 이르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이르려는 끊임없는 추구로 간주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에는 진화론을 위한 모든 단초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이 그리스철학과 기독교,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한 중세신학에 사상과 철학의 토대를 두고 있는 서양철학과 서양인들이 독단적인 진화론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저렇게 허우적대는 근본원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체계는 전형적으로 카톨릭 신앙을 옹호하기 위한 결과론적인 짜맞추기에 불과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은 일찍이 어느 카톨릭 철학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으나, 비록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철학에 입각한 논리와 이성에 호소하고 있더라도 그가 목적하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의 영혼은 정신적인 것이며 그래서 불멸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성서 자체와도 모순(에스겔 18:20, 전도서 9:5,10)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물질에서 식물, 동물, 인간, 신에로 이르는 끊임없는 추구로 간주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은 현대과학의 '검증가능성의 기준'에 의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 “미리 주어진 어떤 결론을 위해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듯이,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를 애써 찾는 태도는 참된 철학의 정신이라 할 수 없다. 거기에는 참신한 생명력이 없으며, 죽은 정신이 있을 뿐이다.

 

이성과 철학을 빙자하여 신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좌지우지하는 형이상학적 만용이, 근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후대 철학자들이 ‘실체’를 다루는 '형이상학'을 얕보는 결정적인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형이상학적인 신 존재증명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희한하게도 서양철학의 목적론적, 진화론적 사고체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목적론적 사고체계에 진화론적 사고를 위한 모든 요소가 내포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진화론적 세계관은 바로 그런 목적론적인 사고체계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결과론적인 짜맞추기’를 위한 열정은 이후 진화론에서, 그리고 “상대주의 옹호”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거의 종교적인 집착으로 그것을 위한 모든 근거를 찾아내려 하는 현대철학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4) 윌리암 오캄

 

전기 스콜라 철학 이래 '보편의 문제'는 항상 중요한 논쟁대상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이란 '개별적 사물'에 대한 것으로서,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고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할 경우 소크라테스는 개별적 사물이고 인간(종), 동물(류)은 보편인 것이다.

 

전기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는 "보편은 실재성을 가지고 개별적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라는 실재론의 주장과 "보편은 단순한 명사(사고에 의한 추상의 산물)에 불과하고 다만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한다(보편은 개별적 사물 뒤에 있다)"라는 유명론의 주장이 대립했다.

 

실재론적 입장에 대립하는 유명론적인 주장은 그동안 이단적인 사상으로서 정통파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나 중세 후기인 14세기에 이르자 윌리암 오캄을 중심으로 유명론이 발전됨에 따라 스콜라 철학의 붕괴가 진행되었다.

 

유명론 부흥의 주인공 오캄은 “오로지 개별자만이 존재하고 실재적인 것은 보편자가 아니라 개별자”라는 전제 위에 그의 철학을 세웠다.

 

그는 "존재는 필연성 없이 증가되어선 안되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실을 가능한 한 적은 사유의 노력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사유경제의 원칙을 표방한 이른바 '오캄의 면도날'을 사용하여 보편의 실재성을 주장한 실재론자들의 철학과 이론을 잘라버리려고 했다.

 

'오캄의 면도날'은 중세신학자들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논쟁 속에서 무의미한 진술들을 토론에서 배제하고자 지나친 논리비약이나 불필요한 전제를 진술에서 잘라내는 면도날을 토론에 도입하자는 것으로, 많은 것들을 필요없이 가정해서는 안되며,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간밤에 천둥과 벼락이 치고 난 다음에 검게 그을린 나무를 발견했다면, 물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동원하여 서로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겠지만 나무가 벼락을 맞아서 그을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은 수의 가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그 가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캄의 면도날'을 도입하여 "보편은 단순한 명사에 불과하고 다만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한다"라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보편의 실재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가정과 전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개별적 사물에게 보편을 부여하는 뭔가가 있다'는 실재론을 면도날로 잘라내버리는 것은 면도날을 구실로 '과학의 정신'에 해당하는 '인과관계'를 배척하고자 하는 폭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보편자는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한다"는 사고나 "보편자는 명사에 불과하고 개별 사물만이 존재한다"는 사고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고가 아니다. 후자는 전자의 보편자에 대해서 단지 '명사'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초기에 "존재와 사고는 분리되어야 한다"라며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는 보편자에 대해서 '정신적인 추상의 산물'의 위치를 부여했지만 결국 그 형상이 생성의 원리로 둔갑했듯이 사물 속에 존재하는 본질을 정신적인 추상의 산물로써 평가절하한다고 해서 그 본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사고에 불과하다.

 

사물들의 본질 혹은 불변하는 공통성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존재하게 된 원인 혹은 이유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 철학의 역사였다고 할 때 오캄의 '사유경제의 원칙'은 이제 더 이상 철학을 하지 말자는 폭력성을 내포한 선언일 수 있었다. 보편이 단순한 사고에 의한 추상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해서 사물들 안에 철학의 중심주제인 보편 혹은 본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한다는 사고는 자칫 '본질 부정'으로 나아갈 수 있고 실제로 그 이후 서양철학은 '본질 부정'을 향해 나아갔다.

 

개별적 사물만이 진실한 실재라는 존재론적 주장은 인식론적으로 볼 때 "사물에 대한 이성적ㆍ추상적인 인식의 근본에는 감성적ㆍ경험적인 인식이 있다"라는 주장으로서 이것은 근대 경험론의 입장과 연관된다. 이런 의미에서 중세 말기 영국의 유명론은 근대에 있어서 소위 '영국 경험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명론적인 입장에서는 경험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신의 존재나 성질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인식이 성립될 수 없고 단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까지 신앙의 합리적 기초를 추구해 온 스콜라철학의 작업은 모두 무의미한 노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캄 자신이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유명론은 중세신학과 철학 그리고 과학에 분열을 가져오고, 스콜라 철학을 내부에서 붕괴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이 학설에 대한 교회의 이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오캄주의는 파리대학에 뿌리를 내려 14ㆍ15세기에 학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파리의 오캄주의자들은 오캄이 형이상학적인 문제의 연구에 적용한 원리를 자연과학적인 연구에 적용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넘어섬으로써 근대적인 천문학과 물리학의 기초를 수립했다.

 

한편 이성과 경험에서 떨어져 나간 신앙철학이나 과학과의 연결을 잃은 신학은 다시 신비적인 직관이나 계시로서의 성서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세의 ‘보편논쟁’은 애초부터 주제설정이 잘못되어 있었다.

 

즉 그것은 ‘개별이나 보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철학에서처럼 주제가 ‘변화 속의 항존성’의 문제로 설정되었어야 했다.

 

애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것은 본질을 의미했다. ‘보편’이란 개념은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흐리고 철학상의 혼선을 초래했을 뿐이다.

 

중세철학은 신을 내세워 우주의 본질과 만물 생성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으므로 ‘보편논쟁’에서 “사물을 사물답게 하는 참된 존재인 본질이 사물에 앞서 존재하느냐, 혹은 사물 안에 실체(實體)로서 존재하느냐, 아니면 본질은 실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명칭’이나 정신적 추상물에 불과한 것이냐?”에 관한 논쟁에서 신이 사물에 본질을 부여했다는 실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중세의 신권적 질서가 무너지면서 중세철학에서도 세상 만물에 본질을 부여하는 존재로서 신의 위치가 점차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중세철학에서 “경험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신의 존재나 성질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인식이 성립될 수 없고 단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세상 만물에 보편자를 부여하는 신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본질’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중세 이후 오캄주의자들은 본질과 실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면서 자연과학적인 연구에 집중하여 현대 물질문명을 뒷받침했지만, 세계의 불변하는 측면인 본질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상실은 세계관과 가치관의 상실로 연결되었다.

 

“본질은 ‘명칭’에 지나지 않고 실재(實在) 안에는 개물(個物)만이 존재한다”라는 유명론자들의 주장에는 ‘본질은 정신적 추상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담겨있었지만, 인식, 지식의 경험을 오직 경험에서만 찾는 영국 경험론에 이르러 그나마 ‘정신적 추상물’에 불과했던 ‘본질’조차 부정되고 모든 진리의 불변성, 필연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문제는 “실재(實在) 안에는 개물(個物)만이 존재한다”라며 본질을 부정한다고 해서 변화 속의 항존성, 혹은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불변하는 공통성이나 동일성, ‘그것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그것다움’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개구리를 여전히 개구리라고 부르고 참나무를 참나무라고 부르며, 심지어 인간은 본질직관능력으로써 세상만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수많은 사물들을 ‘구분’한다.

 

따라서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하는 본질과 동일성을 감안할 때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보편논쟁에서 이룩한 성과인 ‘보편자는 실재이지만 사물에 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존재한다’라는 ‘중용의 실재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불변하는 공통성이나 동일성, 혹은 '그것다움'을 감안할 때, 그것이 “본질은 ‘명칭’에 지나지 않고 실재(實在) 안에는 개물(個物)만이 존재한다”라는 유명론의 설명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세상 만물에 ‘그것다움’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본질의 세계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세상에서 발견되는 본질은 '생명의 실체’가 자신을 세상에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일성 혹은 항존성이다.

 

우리는 여전히 ‘생성의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변화 속의 항존성”이라는 철학의 영원한 과제는 중세신학에서처럼 함부로 신을 내세워 이렇게 저렇게 독단하는 자세가 아니라, 인간이 철학과 과학, 경험을 총동원하여 성실하게 묻는 탐구의 자세로써 이해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할 과제이다.

 

물론 중세신학의 신 존재증명은 인간이 결코 '검증가능성의 기준'으로써 증명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러나 누가 세상 사물에 본질을 부여했는지, 혹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중세신학의 오류와 독단을 이유로”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본질, 즉 항존성이나 동일성의 ‘그것다움’을 부정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다.

 

세상에 본질, 즉 그것다움과 항존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어떤 독단도 용납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세상의 신비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변화'를 절대적인 진리이자 가치로 옹호할 뿐 ‘그것다움’이라는 본질이 갖는 동일성과 항존성의 토대를 상실할 때 '상대주의'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게 된다.

 

누가 세상 사물에 ‘본질’을 부여했는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본질'을 부정하고 '변화 속의 항존성'을 부정하면서 ‘상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현대사회의 현주소이자 가치 상실의 근본 원인이다.